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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곡] 코카서스의 백묵원 (1)- 유진 베르톨트 프리드리히 브레히트 (Eugen Berthold Friedrich Brec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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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 베르톨트 프리드리히 브레히트 (Eugen Berthold Friedrich Brecht)

 

 

- 출생~사망: 1898.2.10. ~ 1956.8.14.

- 출생지: 독일 바이에른주 아우크스부르크

- 활동 분야: 문학

- 대표 작품: <서푼짜리 오페라>(1928),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1939),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생애>(1943)

                   <코카서스 백토의 테>(1945)

- 성향: 비사회적, 사실주의, 반전주의, 표현주의, 마르크스주의

 


 

# 베르톨트 브레히트 연보

 

1898    2월 10일 독일 바이에른 출생.

1919    처녀작 희곡 《바르 Baal》 발표.

1922    《밤의 북소리 Trommeln in der Nacht》으로 클라이스트 상 수상.

1923    《도시의 정글 Im Dickicht der Städte》 발표.

1926    《가정용 설교집 Die Hauspostille》 발표.

1928    《서푼짜리 오페라 Die Dreigroschenoper》로 극작가로서 입지를 굳힘.

1930    《어머니 Die Mutter》 발표.

1932    《도살장의 성 요한나 Die heilige Johonna der Schlachthöbe》 발표.

1933    독일 국회의사당 방화 사건으로 미국에 망명.

1938    미국에서 《제3제국의 공포와 빈곤 Furcht und Elend des Dritten Reiches》 발표.

1939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 Mutter Courage und ihre Kinder》 발표.

1943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생애 Das Leben des Galileo Galilei》 발표.

1945    《코카서스 백토의 테 Der Kaukasische Kreidekreis》 발표.

1949    아내이자 여배우인 헬레네 바이겔과 함께 극단 '베를리너 앙상블' 결성.

1956    8월 14일 동독 베를린에서 심장병으로 사망

 


 

# 브레히트의 연보, 연도별 작품 성향

 

* 1920년대_ 1920년 이전의 브레히트는 뮌헨 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하여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병원에서 근무하였다. 근무 이후 초기에 정치적으로 좌파 성향을 띄어 비사회적이고 무정부주의적인 경향을 보였다. 이후 표현주의 연극에 기반하여 시민사회에 대한 도발과 사회적 비판을 반전적이고 비사회적인 경향을 겸한 냉정성과 풍부한 표현으로 사회를 풍자하는 글을 집필하였다고 한다. 이후 1920년대 후반부터는 “마르크스주의”를 받아들여 좌파적 사상을 작품에 더욱 이입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 “마르크스주의“ ?

 

 마르크스주의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확립한 혁명적 사회주의 이론으로, 마르크스주의의 체계는 19세기 독일의 고전철학에서 변증법유물론을, 또 영국의 고전경제학 중에서도 특히 D.리카도의 경제학으로부터 노동가치설을, 그리고 프랑스의 사회주의자들로부터 사회주의 사상을 비판적으로 계승·발전·통일시킴으로써 형성 되어진 이론이라고 한다.

 

 마르크스의 많은 해석 중 한 관점을 살펴봤을 때 노동력을 자본가에게 팔고 자본가를 위해 일하는 노동자가 받는 임금은 자신이 창출한 가치보다 훨씬 적은 몫에 지나지 않는다. 노동자가 창출한 상품가치와 임금 사이의 차액은 잉여가치로서 모두 자본가 계급에 의해 착취되어 모든 자본주의적 소득, 즉 이윤, 이자, 조세 등의 기초가 된다.라는 말이 있고

마르크스의 에세이를 살펴보자면 ‘우리는 우리가 소명을 받았다고 믿는 자리를 반드시 얻지는 못한다. 사회에서 우리의 관계들은 우리가 그 관계들을 규정할 위치에 이르기 전에 이미 어느 정도 확립되어있기 때문이다.’라는 말이 쓰여 있다.

브레히트는 초기에는 무정부주의자였으나 프리츠 슈테른베르크를 식당에서 만나 그로부터 마르크스주의를 접하게 되면서 새로운 연극 형식을 고안해냈다. (브레히트는 아주 오랫동안 음악을 독자적인 요소로 하여 극들을 통합시키는 방법을 생각해왔다.)

 

=> 1920년대 초기 비사회적, 반전주의적 작품_ <밤의 북소리>(1922), 서푼짜리 오페라(1928)

=> 1920년대 후반 이후 마르크스주의적 작품_ <어머니>(1930), <도살장의 성 요한나>(1932)

 

* 1930년대

- 1933년 나치스가 독일 정권을 장악하고 독일 국회의사당 방화 사건을 구실로 대대적인 정치적 탄압을 전개하자 브레히트는 스위스, 체코, 스웨덴, 핀란드로 정처 없이 망명을 떠났다고 한다. 1930년대에는 덴마크로 망명하여 “사실주의“에 접근한 정치적 의식을 드러내는 시와 희곡을 집필하였다고 한다.

 

=> 19330년대 사실주의적 작품_ <제3제국의 공포와 빈곤>(1938),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1939) 등

* 1940년대

- 1941년 핀란드를 거쳐 미국으로 망명을 지속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에는 미국의 매카시즘(1950~1954년에 미국 전역을 휩쓴 공산주의자 색출 열풍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전형적인 일종의 근거없는 마녀사냥, 속된 말로 ‘빨갱이잡기’ 였다고 함) 때문에 스위스로 망명하여 이 시기에는 극장과의 관계가 모두 단절되었던 망명 중에 작품들을 완성하였다고 한다.

 

=> 1940년대 대표작품_ <코카서스 백토의 테>(1945),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생애(1943), <안티고네>(1948), <파리 코뮌의 나날>(1948), 연극론 개설서 <소사고 원리>

 

 

* 1940년대 이후

- 이후 1949년에 아내인 여배우 헬레네 바이겔과 함께 극단 ‘베를리너 앙상블’을 결성하여, 그의 망명 중의 여러 작품들을 연출하면서 실천 활동에 정력을 쏟았다. 만년에는 더욱 자기의 연극 체계를 발전 시켜 연극인을 양성하였다. 이후 극단 활동에 전념하던 중 1956년 8월 14일 베를린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고 한다.

 


 

→ “베를리너 앙상블“ ?

1949년 브레히트가 결성한 독일의 국립극단.

 

원어명- Berliner Ensemble(독)

구분- 극단

설립일 - 1949년 1월

설립목적- 연극공연

주요활동/업무- 브레히트의 작품 공연 및 고전작품의 개작 상연

소재지- 독일 베를린

 

1949년 1월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와 그의 부인 헬레네 바이겔(Helene Weigel)이 동베를린에 세운 극단이다.

브레히트의 여러 작품과 고전작품을 개작하여 상연함으로써 사회적 현실과 정치적 현실의 결합이라는 브레히트의 연극이념을 잇달아 무대 위에 실현하였다.

 

# 브레히트와 서사극

 

서서극 혹은 소격효과 등 다소 생소한 용어의 주인공인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시인이자 극작가로 어느 작가보다도 통상적인 언어에 비판적 조명을 가하여 굳어진 통념을 깨는데 집중하였다.

 그의 서사극은 관객이 무대 위의 연극에 몰입함으로써 현실도피를 허용하는 연극의 고전적 속성을 뿌리째 흔들었다. 서사극은 배우가 무대 위에 등장해서 관객과 토론을 벌이거나 연극 같지 않은 연극을 공연함으로써 관객들이 무대와 심미적 거리를 갖게 하는 소격효과가 특징이다.

브레히트의 희곡은 이야기를 잘 진행하다가도 “이건 현실이 아닌, 연극이야!”라고 말하는 듯, 극 중 인물이 관객에게 말을 하거나 갑자기 조명이 바뀌며 노래하는 장면이 끼어드는 등 극으로의 몰입을 방해하며 감정이입을 막는다. 이것이 그가 도입한 생소화 기법이다. 이런 기법은 관객으로 하여금 극을 객관적인 눈으로 바라보게 하며,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을 발견하게 해 준다. 이런 입장을 따르면 브레히트의 연극이나 시에 관객이 감정이입을 하게 되면 독자는 작가의 의도를 잘못 해석한 셈이다. 읽는 내내, 그리고 읽고 나서도 껄끄러운 불편함이 남아서 현실을 비판하기 시작해야 한다.

 

#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작품 기법

 

→ “소격 효과” ? (생소화, 낯설게 하기 기법)

- 연극이나 영화 따위에서, 의도적으로 관객과 작품 사이에 거리를 두는 기법으로,

이야기를 잘 진행하다가도 “이건 현실이 아닌, 연극이야!” 라고 말하는 듯, 극 중 인물이 관객에게 말을 하거나 갑자기 조명이 바뀌며 노래하는 장면이 끼어드는 등 극으로의 몰입을 방해하며 감정이입을 막는다. 소격효과는 관객에게 끊임없이 실제와 가상을 구별하도록 유도하며, 이 기법은 독자 또는 관객으로 하여금 읽고 나서도 껄끄러운 불편함이 남아서 현실을 비판하게 만들며, 극을 객관적인 눈으로 바라보게 하여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을 발견하게 해 준다.

 

- 소격효과를 개발한 브레히트는 '관객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 연극이라는 기관의 일반적 기능이며,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연극에서 찾아낸 가장 고귀한 기능일 것이다. 그래서 연극은 관객을 즐겁헤 하는 것을 넘어선 유용성을 가르치려고 해서는 안 된다.' 라고 했다고 한다.

 

‘코카서스 백묵원’을 예시로 들자면 극 속에서 등장하는 원작 ‘가수’ 라는 역할이 시나리오 사이에 계속 등장하여 관객에게 설명하듯 대사를 던지며 이 소격효과 기법의 역할을 한다. 또한 ‘그루셰’ 또한 극 속에서 감정을 노래에 실어 노래를 부르는 등 극 속의 감정이입을 깨뜨리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인간이 자신의 세계를 정확하고 바르게 인식하고 그것을 변화시킬 변혁의 주체로 확립될 수 있도록 돕는 수단은 무엇인가 ? 에 대한 연극적 대답이 브레히트의 연극론이다.

 

# 브레히트의 연기론

 

 그는 자신의 희곡뿐만 아니라 베를린 앙상블이 공연했던 인상적인 작품들을 통해서 스타니 슬라브스키의 연기에 대한 개념을 계승했으며 이것이 널리 알려져 결국은 스타니 슬라브스키의 명성과 쌍벽을 이루었다.

 

 브레히트의 등장인물들은 어떤 계층의 대표성을 띄는 인물들로, 출연 배우들의 사실적인 연기가 때로는 관객들에게 자기비하로까지 느껴지게 표현함으로써 보이는 이로 하여금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그리고 연극의 목적이야 어떻든 연기에 대해서 브레히트 자신은 그의 연기론 스타니 슬라브스키의 생각과 반대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관람객들에게 이따금 충격을 주는 정도일 뿐 비교적 조용한 스타일의 연기에 더 관심을 가졌다.

 

 

# 언어의 사용

 

 브레히트에게 있어서 언어는 연극과 연기의 특징을 나타내는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브레히트는 “3인칭”의 사용뿐만 아니라, 노래와 음악을 사용하여 가급적이면 자연스럽지 않게 노력하였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또한 브레히트는 언어의 목적에 의한 상황에 대한 설명을 강조하였다. 브레히트는 구체적인 사고와 그 사고의 결과로 얻어지는 변화를 목적으로 하였던 것이다.

 동양의 고전극에서 활용하는 언어의 양식화는 그런 의미에서 브레히트에게는 매우 유용한 것이었다. 단지 다른 것이 있다면 동양에서는 관객이 그 양식을 이해하고, 양식이 관객의 동화를 전혀 방해하지 않는 데 반하여, 브레히트는 약속되어지지 않은 양식화로 소외효과를 노렸다는 점이다.

 브레히트는 무대 행동의 객관화를 위한 방법으로 음악과 춤과 마임을 활용한 것처럼 산문과 운문 혼합된 대사를 사용하고, 전통적 운문극의 연극에서도 브레히트는 낭독조 대사를 거부하고 사투리를 섞어 통속적인 대사를 함으로써 등장인물이 연극 속의 인물을 드러냈다는 사실을 부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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