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의 목포에서 활동한 작가로, 시 50편과 희곡 3편 등을 발표하였으며
1926년에 대한해협(현해탄)에 몸을 던져 윤심덕과 자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작가.
김우진의 일생
1897년 전남 장성 출생, 호는 수산.
1897년 김우진은 장성에서 장성군수 성규의 장남으로 태어난다. 할아버지도 헌 관 이었으며 지주였다.
어린시절 이곳에서 어머니의 잃은 슬픔은 김우진의 작품에서 중요한 모티브가 된다. 11살 되던 해(1908년) 장성에서 목포로 이주한 김우진은 지금은 목포 북 교동 성당이 들어선 곳에서 말이 없고 사색적인 성격으로 성장한다.
김우진은 사대부 집안의 장손 답게 철저한 유교교육을 받고 자랐다. 하지만 이탈리아 시인 당 치우의 열정을 숭배 할 정도로 풍부한 감성을 지닌 김우진에게 금욕적인 유교교육은 내면의 갈등을 더욱 부채질한다.
1910년 목포 공립 보통합교 졸업
목포 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소학교를 마친 뒤] 부친의 뜻에 따라 일본으로 건너가 구마모토농업학교와 와세다대학 예과에 입학하여 1924년에 영문과를 졸업했다. 당초부터 시인을 꿈꾸어 구마모토농업학교 시절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였다.
1913년 소설 ‘공상문학’ 탈고
이미 16살에 김우진은 호를 ‘ 수산 ’ 이라 정하고 ‘공상문학’ 이라는 단편소설을 쓰고 시작에 몰두한다.
1916년 정씨와 결혼
유교 지지자였던 아버지는 유교전통에 따라 김우진을 결혼시킨다. 그것은 김우진의 갈등을 부채질하는 또다른 불씨가 된다.
1918년 일본 웅본논업 학교 졸업
부친의 뜻을 무시하고 와세다대학 영문학부에 입학한 후로는 종합예술인연극에 몰두한다. 이때 운명적인 여인 윤심덕 을 만나게 된다.
1920년 극예술협회 발족 - 1921년 동우회 순회 연극단 주도 문예비평 시작
대학시절부터는 연극을 꿈꾸어 1920년에 유학생을 중심으로 조명희·홍해성·고한승·조춘광등과 함께 연극연구단체인 극예술협회를 조직한 후에는 여름방학을 이용해 전국을 돌며 순회공연을 다닌다.
1921년에는 동우회순회연극단을 조직하여 국내순회공연을 했는데, 이 때 공연비 일체와 연출을 담당했고, 상연 극본인 아일랜드의 극작가인 던세니의 「찬란한 문」(단막)을 번역했다. 10월 8일 부산에서 출발해 40일동안 전국을 돌며 공연을 했던 순회연극단의 공연은 국내에서 커다란 반응을 일으킨다.
1924년 목포상성합명 회사사장취임 - 1925년 희곡 ‘이영녀’ ’두더지시인의 환멸’ 탈고 - 1926년 희곡 ‘산돼지’ 탈고
1924년 수산은 부친의 뜻에 따라 목포로 귀향해서 상성합명회사의 사장에 취임하였다.
하지만 김우진의 가슴속에는 새로운 연극운동을 실험하기 위한 의욕이 맹렬한 때라 독서와 창작활동으로 밤을 지새우기가 일쑤였다.
[이 시기에 시·희곡창작·평론에 몰두해 48편의 시와 5편의 희곡, 20여 편의 평론을 썼다]
종우와 이영녀 같은 김우진의 희곡들은 대부분 이 무렵에 쓰여졌다. 가정·사회·애정문제로 번민하다가 김우진은 1926년 독일에서 철학을
공부할 생각으로 동경으로 건너간다.
김우진의 유작 ‘산돼지’의 주인공 원봉처럼 뒤틀린 운명과 시대와의 갈등을 이기지 못한 채 1926년 김우진의 생은 난파당한다.
김우진의 작품
김우진에게 있어서 희곡분야는 그의 문학적 근대성을 작품으로써 가장 성공적으로 형상화한 장르라 할 수 있다.
<정오>, <이영녀>, <두더지시인의 환멸>, <난파>, <산돼지>가 창작희곡이고 번역작품으로 <위렌부인의 직업>이 있다.
시 <죽엄> <사와 생의 이론> <죽엄의 이론> 등에서는 철저한 현실부정과 개혁의 세계를 보여주고 희곡세계 또한 시대적․가정적
고통을 담은 자전적 세계를 보여준다.
[두더지 시인의 환멸]
<두더지 시인의 환멸>(1막)은 제목에서도 풍기는 것처럼 전통윤리와 새로운 서구적 윤리의 첨예한 갈등을 그린 것이다.
[이영녀]
<이영녀>3막극으로 그가 살던 목포 유달산 밑의 사창가를 무대로 빈민들의 처참한 생활상을 자연주의 수법으로 그린 작품이다.
[난파]
대표작으로 꼽히는 <산돼지>(3막)와 더불어 신파극만 존재했던 1920년대 연극 중 대단히 전위적인 실험극으로 우리 나라 문예사상 최초의 표현주의 희곡으로서 의의가 있다.
1926년에 쓴 <난파>는 그가 자살한 해인 1926년 봄에 쓴 작품으로서, 복잡하게 얽힌 유교적 가족구조 속에서 현대적인 서구윤리를 지닌 한 젊은 시인이 몰락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매우 관념적이고 상징적인 이 작품은 그대로 그의 자서전이기도 하다.
[산돼지]
<산돼지>는 친구 조명희의 시 <봄 잔디밭 위에>에서 암시를 얻어 쓴 작품으로, 좌절당한 젊은이의 고뇌와 방황을 음울하게 그렸다.
특히, 그의 사상인 사회개혁을 잘 보여주며, 지극히 몽환적으로 끌고 간 것이 특징이다. 그가 이 작품을 가리켜 자신의 '생의 행진곡'이라고 고백했듯이, 개화지식인의 임상보고서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김우진은 <창작을 권합네다>에서 세 가지 기본적 창작방향을 제시하였다.
즉 첫째, 윤리면에서 전통적 유교모럴을 깨는 정신, 사회개혁을 테마로 할 것, 둘째, 여성의 문제로서 연애, 결혼, 모성을 테마로 하는 것,
셋째, 생명, 죽음, 신 등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를 테마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이와 같이 그는 자신이 제시한 세 가지 창작방향 안에서 작품을 썼는데 작품전체에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것은 사회적 개혁사상이고, 기법에 있어서는 <정오>와 <이영녀>를 제외하고 표현주의 상징 수법을 쓴 것이 특징이다.
김우진의 극은 당면과제인 신파극을 극복해야 한다는 문제를 짊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당시 극의 관습이었고 관객의 현실이었던 가정극에 대한 다양한 극복을 시도하고 있다. 김우진의 희곡은 주로 가정과 사회의 인습에 의해 불행한 결말을 맞는 여성 혹은 예술가의 삶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표현주의극의 요소를 도입하여 새로운 극 형식의 창출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는 가부장제 대가족 제도에 대한 비판과 가족주의적 삶에 대한 반항을 자신의 문학의 주된 테마로 하고 있으며 극 내부에서는 연애 모티프와 함께 부자간의 대립을 다루고 있다.
초기 습작 <정오>는 하나의 습작으로서 항일적인 소인극으로, 학생극의 관념적 성격을 노출.
<이영녀>는 자연주의의 영향을 받은 작품으로 반성적 지식인의 객관적 시선을 유지한다.
<두더기 시인의 환멸>은 스트린드베리의 희곡 <유리에 아가씨>에서 다루어진 바와 같은 현대 여성의 비극을 표현하고 있어 표현주의의 영향을 다양하게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에서 그는 자신의 문제로 시선을 돌리면서 자신의 생활사와 사적 경험으로 극을 채우고 있다.
<난파>는 상극적인 부자관계를 통해 전통 인습과 근대의식의 갈등을 가장 첨예하게 형상화한 작품으로, 작가의 시선이 작가의 내면으로 집중되면서 사적인 가정극이 도달할 수 있는 하나의 극단적인 표현주의극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산돼지>는 동학농민운동을 소재로 하고 있으면서도 사랑을 복선으로 깔고 작가 자신의 고백을 담아, 객관성과 주관성의 균형을 시도하여 극의 주제도 사회적 이념가치의 추구와 개인적 정열의 문제인 연애 모티프가 대립적으로 공존하고 있어 표현주의적인 형식과 주제를 잘 구현했으며, 사실주의 극에서 출발하여 표현주의극과의 대결을 통해 진정한 신극을 묘사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평가 받는다.
이처럼 자기가 겪은 시대적 고통을 희곡 속에 적절히 투영함으로써 계몽적 민족주의나 인도주의 내지 감상주의에 머물렀던 기성문단을 뛰어 넘은 표현주의 작품으로 실험한 우리나라 유일의 극작가로 연극계와 문단에 탁월한 이론을 제시한 평론가이다.
그는 이러한 희곡 창작 외에도 당대의 문학‧연극운동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며 뛰어난 평론들을 많이 남겼는데, 그 중에서 <소위 근대극에 대하여> <자유극장이야기> <사옹의 생활> <구미극작가론>은 탁월한 논문이다. 그리고 <쓰키지소극장에서 인조인간을 보고>라는 글은 연극평의 한 모범을 보여 준다. 또 <창작을 권합네다1925>라는 글에서 표현주의를 체계적으로 소개했으며, 전통적 인습타파를 작품 주제로 삼은 한국작가들에게는 표현주의가 가장 알맞은 창작방법이라는 논지를 폈다.
그는 대단히 진실적인 문학관을 가지고 있어서 <이광수류의 문학을 매장하라1926> <아관 계급문학과 비평가>라는 논문을 통해 계몽적 민족주의와 인도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한편, <소위 근대극에 대하여>(1921), <자유극장 이야기>(1926), <우리 신극운동의 첫길>(1926) 등의 연극 비평을 통해서는, 서구의 연극운동 특히 소극장운동을 소개하고 이를 우리 현실에 적용하기 위한 실천적 방법을 모색하였다.
또한, <조선말 없는 조선문단에 일언함>이라는 평론에서는 서양의 경우를 예로 들어 순수한 조선어의 부흥과 개량을 역설했고, 새 문전의 제정과 사전의 출현, 구비전설과 민요ㆍ동요의 수집을 촉구했고, 우리의 독특한 시가율을 가질 것과 외국문학의 우리말 번역, 신문ㆍ잡지의 대중화 등을 주장했다. [아마 1920년 일본의 문화통치 시절이라 더더욱 우리의 것을 보존해야한다는 마음이었을 듯 하다]
<아관계급문학과 비평가>(1925) 등의 평문을 통해 당시 한국의 절박하고 암울한 사회와 인생을 묘사하려면 표현주의가 가장 적절한 창작 양식이라고 주장하고 자신의 창작을 통해 이를 실험했다. 이 밖에도 <구미현대극작가론>(1926)을 통해 당대 서양의 현대극작가들에 대한 밀도 있는 논지를 펼치고 있어, 그의 연극 활동이 매우 탄탄한 기반 위에서 전개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그는 자기가 겪은 시대고를 적절히 희곡 속에 투영함으로써 당시 계몽적 민족주의나 인도주의 내지 감상주의에 머물렀던 기성문단을 훨씬 뛰어넘은 선구적 극작가였으며, 특히 표현주의를 직접 작품으로 실험한 점에서 유일한 극작가이다.또한, 해박한 식견과 선구적 비평안을 가지고 당대 연극계와 문단에 탁월한 이론을 제시한 평론가이며, 최초로 신극운동을 일으킨 연극운동가로 평가된다.
김우진의 작품은 대부분 유고로 전해지다가 <김우진 전집>이 간행되면서 5편의 창작희곡, 3편의 번역‧번안 희곡, 다수의 연극비평, 48편의 시와 3편의 소설 등이 묶여져 나왔다.
死[사]와 生[생]의 理論[이론]
- 왜 살고 잇소.
- 죽을녀고.
- 그러면 남이 죽이거나 당신]이 스스로 죽이기를 원하오?
- 아니요.
- 왜?
- 사는 것이 죽음이 되는 일도 잇지만, 쥭음이 사는 수가 잇는 이치가 잇는 것을 아오?
- 그럴 도리도 잇겠지.
- 도리로 생각해서는 안되오.
- 그러면?
- 삶이나 쥭음이나 도리가 아니요. 둘이 다 실상은 生[생]의 양면에 불과하오.
그러닛가 도리를 넘어서 生[생]의 핵심을 잡으러는 이에게는, 삶이나 쥭음이나 문제가 되지 안소.
- 당신은 只今[지금] 살고 잇소?
- 아니요. 그러나 死[사]를 바래고 잇소. 참으로 살녀고.
1926. 김우진
+ "사의 찬미"
작가 김우진과 한국 최초 소프라노 가수 윤심덕이 '현해탄'에서 동반자살했다는 이야기로 만들어진 드라마, 사의 찬미.
배우들 연기,영상미,스토리 모두 최고입니다!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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