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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곡] 코카서스의 백묵원 (2) -서사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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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사극

 

⓵ 서사극의 개념

 ‘서사극’이란 독일어표기로 'Episches Theater'라는 말을 의미하며, 1920년대에 종래의 감정이입에 바탕을 둔 ‘극적’ 연극으로서는 다룰 수 없는 ‘정치적인 주제’를 다루기 위하여, ‘E.피스카토르’의 서사적 요소에 대한 주목에 자극을 받은 ‘베르톨트 브레히트(1898~1956)’가 자기 연극을 특징짓기 위하여 사용한 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시학』에서 비극의 기능이라고 할 수 있는 ‘감정의 정화(카타르시스)’의 작용에 대해 이야기한다. 줄거리가 철저하게 통일되면 감정의 이입이 용이하게 되는데 이때 관객은 연민과 공포의 감정을 느끼게 되고 카타르시스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서사극은 극의 목적을 카타르시스에 두지 않고 현실을 비판하고 변증법적으로 지양해 나가는 데에 그 목적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관객의 감정이입을 오히려 차단하고자 했다. 브레히트가 주인공과의 동일화에 반대한 이유는 관객이 어떤 인물을 단지 감정적으로 따라갈 경우 무비판적이고 수동적이게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 관객은 비극적 혹은 희극적 결말에만 관심을 가질 뿐 사건의 과정이나 원인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브레히트는 연극을 통해 관객이 이성적이고 비판적인 판단을 내리도록 유도하려했다.

 

 브레히트는 관객들이 단순히 보고 즐기는 연극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연극을 보면서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찾아내고 비판할 수 있는 관객들의 적극적인 태도에 대해 주목하였다. 그러기 위해 브레히트는 관객들에게 감정이입 대신 연극 무대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거리 개념을 도입하면서 ‘생소화(소외 효과)’라는 서사극의 핵심 기법을 내세웠다.

 

 그의 말에 따르면 서사극의 목적은 교육에 있다고 한다. 열성적인 사회주의자였던 그는 연극의 임무는 사회변화를 유도하는데 있다고 믿었다. 소위 교훈극이라 불리는 1930년대 초의 단편극에서 브레히트는 단순히 대중 소비와 오락만을 위해 창작된 연극 작품을 공격하면서 그런 작품들을 가리켜 ‘요리법(culinary art)’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그의 이론을 요약해 보자면, 연극이 교훈을 주는데 성공하기 위해서는 관객들의 감정이 아닌 지성적인 판단력을 자극해야 한다고 했다. 이 부분에서 ‘감정적 맞물림’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피스카토르와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브레히트는 작품이 관객들을 연극적인 행위로부터 감정적으로 분리시켜야 한다고, 즉 이화작용(alienated)을 일으켜야한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이화작용이란 관객과 극과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소위 ‘거리두기’를 의미한다. 따라서 그는 이런 효과를 창출해 내기 위해서는 서사극이 바그너의 목표인 총체적 예술 작품, 즉 통일적인 예술 작품이라는 개념을 포기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한편 이런 총체적인 예술 행위를 포기하는 대신 개별 작품들은 독립적으로 정치적인 메시지를 관객에게 전달해야 한다고 했다.

 

서사극이 생겨나기 전의 관객이 연극은 보여주는 것만을 보며 즐기면 그만이라는 지극히 수동적 형태였다면, 서사극이 생겨난 후의 관객은 공연의 내용을 보며 작품에서 제시하는 사회적 문제에 대한 해결점을 찾기 위해 객관적으로 고민해 보는 등 능동적 형태로 변하게 만들었다. 브레히트는 운명에 따른 비극적 결말을 거부했고, 극은 현실의 모순을 보이는 역할만 할뿐, 현실 극복에 대한 해답을 관객의 몫으로 남겼다. 이는 서사극이 지닌 교육적 특징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⓶ 서사극의 발생배경

 

- 전통극(아리스토텔레스 극)의 반발

 19세기에서 20세기로 접어들면서 진행되어온 역사적 대 변혁기를 거치면서 아리스토텔레적인 전통 연극에 대한 거대한 도전이 연극 무대에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전통적 연극형식으로는 이제 더 이상 변화된 현대적 소재를 담아 낼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전통극(=아리스토텔레스극)

19세기 이전의 사실주의 극까지, 20세기 이전의 극을 전통극이라 한다.

극을 인간 삶의 모방으로 본다.

관객들에게 감정의 정화, 즉 카타르시스를 경험케 하는데 그 목적을 두었다.

연극은 인간 삶의 한 단면을 가장 생생하고 그럴듯하게 보여줌으로써 극중 인물과 관객과의 감정의 동일시 내지는 교류를 연극의 최우선의 목적으로 삼았다.

무대 위의 이야기는 허구의 세계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독자가 직접 경험한 이야기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현대극(=비아리스토텔레스극)

20세기 이후 표현주의 극, 서사극, 부조리극 등의 양식을 현대극이라 한다.

극에 그려진 세계는 현실 세계가 아니며, 극이 인간 삶을 완벽히 그릴 수 없다고 본다.

전통극은 주로 인간의 외부적인 세계를 보여주고, 소외되고 분열된 현대인의 내면세계를 적절히 그리지 못한다고 본다.

현대극의 출발 취지는 희곡이 그려내는 세계가 불완전하고 일면적일 바에야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 그려내어 관객의 참여를 이끌어내자는 것이었다.

 

- 표현주의 연극에 반기를 들고 나온 장르

 제1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 사회는 민주적 성격의 헌법이 등장했지만, 패전으로 말미암은 경제적·사회적 혼란은 더욱 심해져가고 정당의 난립, 실업자들의 폭동, 그리고 나치즘의 등장 등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는 사건들로 인해 독일은 결국 무정부 상태에 이르렀다. 이러한 상황에서 독일의 젊은 예술가들이 정치ㆍ사회에 비상한 관심을 쏟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 중 하나가 바로 ‘베르톨트 브레히트’였는데, 사회개혁 또는 혁명을 꿈꾸어 극장을 하나의 토론 내지는 시위적 표현이 가능한 의사표현의 장소로 생각하기도 하였다. 그는 극좌적 경향 때문에 비난을 받기도 하였지만 그의 무대표현 기법은 독창적인 것으로 이어져 ‘서사극’으로 정립된다.

 

 초기 독일 표현주의 연극은 일종의 저항극으로 1차 세계대전 이전의 가족 제도와 관료제도의 권위, 확고한 사회질서, 삶의 기계화에 대한 도전으로 생각되었다. 이것은 기성세대에 대한 젊은이들의 자유 항거를 담은 격렬한 극이었고 당시 예술은 이러한 대결을 위한 수단이었다. 그러나 표현주의가 지니는 사물의 ‘본질’이나 ‘인간’ 자체에만 관심을 집중하는 반리얼리즘적 성격은 '무기력한 자들의 저항'이라는 비판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었다. 브레히트의 초기 작품 세계 역시 ‘반시민성’을 특징으로 삼고 있지만 표현주의 작품처럼 단순히 관념적인 차원에만 머물지 않을 뿐 아니라 언어적 측면에서도 리얼리즘적 특징을 보여준다.

 

 표현주의 연극이 너무나 주관적이며 낭만적이라고 생각되어졌던 까닭에 그것에 반기를 들고 등장한 것이 서사극인 것이다. 그러나 서사극은 사실주의에 대한 반대 감정에 있어서, 즉 연극적인 연극에 대한 신임에 있어서는 표현주의 연극과 입장을 같이한다. 브레히트는 고전극의 형식이나 문체를 버린 실험적이고 교술적인 색채가 농후한 정치 및 사회주의 서사극의 형태를 확립하였고 인간이 운명에 좌우된다는 종래의 고장관념을 연극을 통해 타파하려고 했으며 연극을 하나의 무기로 생각했던 것이다.

 

 


 

③ 서사극의 특징

- 서사적

 브레히트의 실험적인 극은 전통극 보다는 오히려 ‘서사시’를 닮아 서사극이라 부른다. 대화와 해설이 교차하는 서사시는 단일한 화자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제시한다. 서사극 역시 장소와 시간을 자유로이 이동하며, 어떤 장면은 해설로 처리하고 또 어떤 장면은 시연해 보여준다. 단 하나의 짧은 구절로 시간의 경과를 채워주며, 한 역사적 시대 전체를 쉽게 커버한다. 이러한 제시 방식은 사실극 보다 서사시에 가까운 것이다.

 

- 게스투스

 브레히트 연극미학의 핵심 개념 중 하나로서 사회적 제스처, 사회적 자세로 번역되기도 한다. 브레히트는 “게스투스는 인간들 사이의 상호적인 관계를 드러낸다.”고 말한다. 즉, 기존의 무대에서 행해지던 배우들의 언어나 동작은 주관적인 감정이나 생각을 드러내 줄 뿐 인물들 상호 간의 사회적 관계를 보여주는 데에는 미흡함을 비판한 것이다. 이는 개인적인 행동을 결정짓는 사회적 관계까지 포괄하는 상호 주관적이고 사회적인 개념이며 동작 하나하나에 신분과 직업 그리고 처해 있는 상황에 따라 어떠한 몸짓이 그 인물의 사회적·경제적 관계를 가장 명확하게 드러내게 한다. 그리고 배우에게 인물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제반 관계를 보여주도록 요구한다.

 

- 사실주의적 요소 배제

 사실주의 연극은 관객들을 무대 위의 상황에 끌어들이는 작품이기 때문에 무대 위의 각종 장치나 배우들의 연기는 철저히 관객들을 작품에 동화시키는 요소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서사극은 그와 반대로 관객을 철저히 이화시켜야 하기 때문에 사실주의적인 요소를 철저히 배제하고 있다.

 

④ 서사극과 극적 연극의 차이점

- 극적 연극에서는 일정한 플롯, 다시 말해 줄거리에 중점을 두는 반면, 서사극에서는 서술적 이야기로 진행된다.

- 극적 연극은 관객을 무대 상황으로 유도하며, 사건의 일정한 연결에서 수동적으로 감명을 느끼게 하지만, 서사극은 관객을 관찰자의 입장에 머물게 하며, 유동적인 사건의 전개에서 능동적으로 인상을 받게 한다.

- 극적 연극은 관객으로 하여금 수동적 경험 속에서 감정을 유발시키지만, 서사극은 능동적 인상 속에서 관객으로 하여금 세계의 모습에 대해 결론을 내리게 한다.

- 극적 연극은 무대에서 관객에게 체험을 전달하지만, 서사극은 관객에게 장면을 연구시킴으로써 지식을 전달한다.

- 극적 연극은 동정이나 증오나 의구를 느끼며 정신적으로 정화하지만, 서사극은 관객에게 판단을 촉구한다.

- 극적 연극은 관객에게 암시를 주지만, 서사극은 관객에게 토론을 위한 논쟁점을 제공한다.

- 극적 연극은 고정불변의 인간상을 보여주지만, 서사극은 가변적이며 변화하는 인간을 보여준다.

- 극적 연극은 결말에 대한 긴장감을 주지만, 서사극은 사건 진행 그 자체에 대한 긴장감을 준다.

- 극적 연극은 한 사건이 중심이 되어 한 장면이 다른 장면으로 연쇄적 상호관계에서 이어져 나가지만, 서사극은 장면과 장면이 명확한 줄거리를 가지고 독립적인 위치에 있다.

- 극적 연극은 사고가 존재를 결정하지만, 서사극은 사회적 존재가 사고를 결정한다.

- 극적 연극은 사건 전개가 직선적이고 진화적인 결정론이지만, 서사극은 사건 전개가 곡선적이고 중간 발언을 통해 사건의 진행중 극의 도약을 초래한다. 즉 사건의 돌발적 변화의 계기를 극에 삽입시켜 극의 환영(Illusion)을 방해한다.

- 극적 연극은 무대에서 모든 사건, 그리고 인물이 현실 그대로임을 강조하지만, 서사극은 이런 무대약속(stage convention)을 거부한다.

- 극적 연극은 불을 끄고 무대 위로 조명을 보낸 후에 극이 시작되며 이런 가운데 관객은 긴장된 상태에서 무아의 경지에 빠져들게 되지만, 서사극은 극장의 불은 끄지 않는다. 극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불은 그대로 있다. 관객이 극장에 들어오면 막은 이미 열려있다. 조명기구 및 장치도 그대로 볼 수 있다. 무대 전면을 넘어 배우가 관객을 향해 직접 질문과 독백을 한다든가, 막이 오른 후나 장면마다 표어, 명구, 격언을 내걸어 붙인다거나 혹은 막을 내리지 않고 무대를 개조하기도 한다. 그리고 감정이 격화될 만한 곳에 의식적으로 춤과 노래를 삽입한다. 이 모든 것이 극적 연극, 즉 긴장요소로 충만된 환영극(Illusion Theater)을 파괴하기 위함이다.

- 극적 연극은 장치가 사실적이지만, 서사극은 상징적이다.

- 극적 연극은 감정이 위주가 되지만, 서사극은 이성이 위주가 된다.

- 극적 연극은 폐쇄된 희곡 형식으로서 극중의 현실이 침해되지 않지만, 서사극은 개방된 희곡 형식으로서 연극을 단순한 연극으로 노출시키며, 환영의 파괴를 의식적으로 노력한다.


 

2. 생소화

* 소외 효과, 이화 효과 등으로 번역되지만 한국브레히트학회에서는 <브레히트의 연극세계>를 출판하면서 ‘생소화’라는 단어로 번역용어를 통일했다.

(생소화 = 소외 효과 = 낯설게 하기 효과 = 이화 효과)

 

익숙하고 자명한 사실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함께 감추어져 있던 진실을 찾게 하는 ‘생소화’는 브레히트의 서사극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요소로, 무대 위의 사건을 최대한 객관화시키고 관객의 감정 이입을 차단하고, 의도적으로 낯설게 만들며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일상적인 것을 예기치 못한 것으로 바꿔 주는 역할을 한다. 무대 위에서 극적 환영을 깨뜨려 버리며 무대 위의 모든 것에 새롭고 친숙하지 않은 빛을 던져 준다.

 

 사물을 이상하게 제시하기 위해 노래, 해설, 영화 장면 등을 삽입하는 기법들을 사용한다. 이로 인해 관객은 지금까지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인 사실조차 비판적으로 보도록 유도된다. 또한 새로운 구체적 현실 인식을 가능케 해주기 때문에, 관객들에게 현실 변혁에 대한 가능성을 믿게 하고 그 필연성에 동의하게끔 만든다. 이와 같은 브레히트의 교육적이고 이성적인 서사극은 관객들에게 지적인 호기심과 재미를 주었다. 브레히트는 생소화의 반대개념인 감정이입은 배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이러한 생소화가 무대 연출 및 배우, 관객의 행동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했다.

 


 

3. 생소화의 연극적 방법

 

① 무대의 개방

 브레히트의 서사극은 프로시니엄 무대에서 '환상의 조작'의 주인인 제 4의 벽의 인습을 거부한다. 브레히트는 전통적인 연극은 관객에게 수동적인 입장을 취한다고 생각했기에 더 이상 관객은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능동적인, 현실을 인식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브레히트가 거부하려 했던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연극에서 연기자는 바로 코 앞에 관객을 두고 연기하면서도 아무도 자신을 보는 사람이 없는 듯 연기하며, 관객은 입장권을 구해서 극장에 들어 온 한 집단을 이루면서도 제 4의 벽을 열쇠 구멍으로 간주하여 마치 자신만이 은밀히 어느 현실 세계를 목격하는 듯 관극한다.

 

 브레히트의 서사극에서는 이러한 은밀한 약속, 즉 제 4의 벽의 인습이 부정된다. 또한 현대 조명기술이 산출해 낼지도 모르는 극적 환영을 막기 위하여 무대조명의 광원을 노출시켰다. 또한 객석의 조명을 켠 채로 진행되거나, 무대 커튼을 반만 가려 소품의 교체 등이 그대로 노출되게 한다. 또 슬라이드를 사용하여 과거의 사건이나 동시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을 무대 위에 제시하고, 무대를 자동 기계화함으로써 장면 전환의 다양화를 꾀하게 된다. 그리고 영화를 사용함으로써 무대를 더욱 완벽하게 처리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것들은 희곡이 가지는 장르적 한계를 극복하여 이야기적 요소를 더욱 완벽하게 제시하려는 의도이다. 그리고 극적 환상을 깨뜨리려는 의도이기도 하다.

 

② 장면전환

 대부분의 브레히트 극에서는 전래적인 막의 구분이 없고, 독립적인 장면으로 구성된다. 브레히트는 각 장면의 제목을 플래카드나 편판 혹은 환등으로 무대의 뒷면에 비추어서 생소화를 낳고 있다. 근본적으로 브레히트는 무대를 사실적으로 꾸미는 만화경무대를 거부한다. 브레히트의 무대는 세상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단순히 극장의 한 부분일 뿐이다. 그래서 브레히트는 무대장치에 있어 가장 필수적인 것에 국한시킬 것을 요구한다. 이런 점에서 다음 장면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장소를 알려주는 장면제목은 관객으로 하여금 환영에 빠지지 않고 자신의 경험을 통해 생각할 수 있도록 한다.

 
 
 
 

③ 해설자(= 서술자 = 설화자)의 등장

 해설자는 서사시나 소설에서 작품을 독자에게 중개해 주는 허구적인 존재이다. 즉, 소설과 서사시의 허구적 세계와 작가 및 독자의 경계선에 위치하여 작품을 서술하는 존재인 것이다. 브레히트는 기존의 극적 관습을 깨고 무대 위에 해설자를 등장시킴으로써 소위 '제 4의 벽'을 제거하였다. 가령 같은 시간 다른 장소에서 일어나는 두 사건의 경위를 해설자가 이야기한다든가, 혹은 무대 위의 사건에 대해 해설, 논평하기도하고, 극중 사건에서 벗어나 관객을 향해 대사를 하기도 한다. 특히 관객을 향한 해설자의 대사는 사건 진행을 중단시킴으로써 극적 환상을 파괴하여 관객들이 객관적으로 극을 관람하게 만들었다.

 

④ 노래의 빈번한 사용

 브레히트 극에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노래'는 가장 중요한 생소화 수단 중의 하나다. 대화의 상황에서 노래하는 상황으로 옮아갈 때 관객은 그때까지와는 다른 태도를 갖게 되어, 그때까지의 태도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노래나 음악이 무대 위의 사건 진행에 대한 보조적 기능을 갖는 것이 아니다. 공연에 참여하는 각 예술형식은 자신의 고유성 및 독립성을 보유해야 한다는 것을 브레히트는 강조하고 있다. 무대상에서 음악은 독자적인 가치를 지니며, 관객의 환상을 파괴하여 연극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이를 비판적 거리를 둔 해설의 대상으로 삼게 한다. 즉 노래는 관객을 일깨워 주고, 관객의 극중 몰입을 방지하여 비판적으로 극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⑤ 극 중 극

 이 구성은 소설에서 '액자소설'의 형태와 통한다. 그러나 소설에서의 기능과는 오히려 반대적인 것이다. 소설에서는 사실이라는 환상을 불러일으키기 위함이고 극에서는 극에 불과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이러한 극의 이중화를 통해서 어떠한 이중적 긴장도 생기지 않는다. 반대로, 속에 든 극과 바깥 부분의 극은 서로가 상대화한다. 두 부분의 극은 서로가 무대 장면의 실제성에 대한 가능한 요구를 상쇄한다. 그것들은 극적인 환상을 이완시킨다. 관람석에 있는 관객은 무대 위에서 다시금 관중과 공연을 봄으로써 관객으로서의 자기 위치를 의식하게 되기 때문이다.

 

⑥ 배우의 연기

 브레히트는 배우가 극중 인물에 빠지는 것을 배재하기를 원하였으며, 이를 위해 등장인물들이 관객에게 그들의 역할 혹은 동작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허용하였다. 이는 배우가 자신을 등장인물로 생각하지 않고, 자신에 대해서 그의 고유의 비평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행동 양식 등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야하는 것이다. 그는 낯익은 것들의 새로운 측면들을 밝혀내어 현실을 상기하기 위해 일상적인 사물들과 자기 자신을 외부의 시선으로 보아야한다고 말했다. 전통 연극에 있어서는 배우가 ‘실수’를 할 때 생소화의 효과가 생긴다. 이 효과를 의도적으로 내기 위해, 브레히트는 “배우는 자기 배역의 대사에 대해 이상히 여기며 반대 의견을 표하는 자세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배우에게 있어서 동작을 낯선 것으로 만들기 위한 방법으로 동작을 얼굴 표정과 분리시키는 방법이 있다. 배우는 가면을 쓰고 거울 앞에서 자신의 동작을 관찰해 보면 좋다. 가면을 쓰고 연습을 하면서 배우는 어법도 생소화시킨다.”고 주장했다.

 


4. 한국의 서사극

 

 한국의 서사극은 1960년 이근삼의 <원고지>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60년대에 ‘서사극’이라는 용어는 찾아보기 어렵고 ‘브레히트 연극’ 아니면 ‘실험극’이라는 말로 통칭 되었다. 1960년대의 공연목록에서는 브레히트를 찾을 수 없다.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모든 정치적 사회적 운동이 나라를 위한 옳은 뜻으로 국가의 기본 방침이었다. 브레히트는 좌익 작가로 분류되며 공연이나 출판 검열을 통과할 수 없었다. 1987년에 세계 저작권협회에 가입함으로써 공연은 자유스럽게 되었다.

 

 한국 현대극이 서사극의 정치적 이념성을 온전히 수용하게 된 것은 1980년대에 이르러서이다. 서사극은 독자적인 연극 양식으로 존립하기보다는 다른 양식과 복합적으로 결합되는 길을 택했다. 정치적인 소재의 금기를 돌파하고 다양한 형식 실험을 가능케 한 점에서 서사극이 현대극에 미친 영향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5. 작품에 나타난 서사적 요소

- 베르톨트 브레히트 作 <코카서스의 백묵원>

 

삽화적 구성 (에피소드식 구성법)

Ⅰ. 극(서막)

   ⅰ. 계곡 소유권 논쟁 - 2차 세계대전 직후, 집단농장 '갈린스크'와 '로자룩셈부르

                         크'의 논쟁과 해결. 가수 등장.

Ⅱ. 극 중 극 - 가수가 해주는 이야기 형식

     ⅰ. 그루쉐 이야기 (아주 오랜 옛날)

          2장 지체 높은 아이

          3장 북쪽 산악지대로의 도주

          4장 북쪽 산악지대에서

     ⅱ. 아쯔닥 이야기 (그루쉐의 이야기로부터 2년 전)

          5장 재판관의 이야기

     ⅲ. 그루쉐와 아쯔닥의 만남

          6장 하얀 동그라미 재판

 

 그루쉐의 이야기가 끝나면 2년 전으로 돌아가서 아쯔닥의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6장에서는 두 이야기가 연결되어 진행된다. 각 장면들이 독립성을 가지는 동시에 유기적인 관련성을 가지는 이런 구조적 형태를 ‘극 중 극 (Spiel im Spiel)’이라고 하는데, 소설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극 중 극’의 구조에서 관객은 현재에 위치해 있으면서 시간과 공간이 다른 여러 차원의 시각을 통해 극을 볼 수가 있다. 관객은 무대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휩쓸리지 않고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며 비판적인 자세를 취할 수 있다. 이처럼 ‘극 중 극’의 구조는 관객이 무대에 갖는 환상인 연극적 환상을 파괴하고 무대의 사건을 관찰할 수 있는 거리감을 갖게 한다. 즉, ‘극 중 극’은 가장 효과적이고 적절한 서사적인 기법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② 가수와 악사의 등장 (해설자의 역할 강화)

 서사극은 관객의 비판을 중시한다. 서사극 배우의 역할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설명하는 것’이기 때문에 서사극은 해설자의 역할을 강화한다. 해설자는 사건의 전체적 조망이나 진행방향을 미리 알려준다. 그럼으로써 관객은 객관성을 유지하게 되어 극적 세계의 허상에 몰입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이 작품에서 해설자의 역할은 가수가 하는데, 가수는 직접 노래를 함으로써 상황을 설명한다. 또한 악사와 함께 등장인물의 감정, 마음 상태, 침묵을 관객에게 시적으로 표현하고 주인공의 독백을 대신 읊기도 하며, 시간과 공간에 변화를 주기도 한다. 가수는 서사시나 소설에서처럼 사건의 전말을 모두 알고 있고 연극적 사건을 해설, 보고하는 역할을 한다. 뿐만 아니라 사건에 직접 개입하기도 하고 의견을 말하며 사건의 흐름을 조종하기도 한다. 그 외에 가수는 연출자로서 배우에게 직접 사건 진행에 관한 명령을 내리기도 한다. (Ex: 3장에서 그루쉐가 자신과 미헬을 쫓는 무장기병들을 만나자 가수는 그루쉐에게 뛰라고 명령하고, 그루쉐는 가수의 말을 듣고 몸을 돌려 혼비백산한 채 뒤돌아서 뛰기 시작한다.)

 

 

③ 인물 성격의 다양화

 주인공의 성격에 의해 사건이 전개되는 기존개념을 브레히트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 희랍비극이나 고전비극에서는 주인공의 성격이 바로 비극의 주요인이 되고, 이로 인해 사건이 꼬이기도 하고 풀어지기도 하지만 브레히트의 극에서는 그러한 특징을 찾아볼 수가 없다.

 

 처음에는 어리석게만 보이는 그루쉐의 어설픈 선이 극의 후반에서 용기와 인내심, 자기희생으로 모성의 완전함을 이루는 그루쉐의 모습과 ‘형편없이 천박한 재판관’ 혹은, ‘천박한 인간의 모습으로 가장한 혁명에 실망한 사람’으로 표현된 아쯔닥의 모습은 이를 잘 말해준다.


+등장인물의 기능적인 역할

 

 브레히트는 그의 희곡 작품들에서 생소화 효과를 달성하기 위해서 많은 연극 외적인 장치들을 도입하고 있다. 그는 항상 예술과 현실의 구분을 강조했고 현실의 인식과 그것의 실제적 변화도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주장했다. 즉, 무대상의 사건과 인물에 대해서 거리를 유지하면 제시된 사건과 그것의 인위성까지 동시에 보기 때문에 더 많은 것을 볼 수가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소외효과"의 개념을 찾을 수 있다. 감정이입은 보는 이의 비판 능력을 상실하게 함으로 "소외효과"로 인해 관객은 눈에 보이는 것과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객관적인 능력을 가질 수 있게 된다. 희곡 『코카서스의 백묵원』에서도 많은 서사적 요소들이 사용되었는데,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가수의 등장과 그의 다양한 역할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전에 브레히트가 그루셰의 아이에 대한 사랑을 제한적으로 묘사하는데 그것은 그녀가 너무 영웅적으로 보여 관객으로 하여금 감정 이입을 유발시키는 것을 막기 위한 “소외효과”의 의도에서 나온 발상으로 볼 수 있으며, 또 아주 어렵고 힘든 현실에서 이웃 사랑을 실천하려는 한 인간의 현실적 갈등을 솔직하게 표현한 것이다.

 브레히트는 소설에서 화자의 역할을 무대상의 ‘가수’에게 부여함으로써 소설의 다양한 서사적 서술 기능을 가수의 노래에 맡기고 있다. 이러한 시도를 통해서 극의 진행이 방해 받게 되면서 작가가 의도한 생소한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에 이 작품에서는 다른 작품에서처럼 중단 시키는 방법으로 생소화 기법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 즉, 가수는 퇴장하는 일 없이 시종일관 무대에 있으므로 관객은 종래의 극에서처럼 환상에 빠지는 일 없이 언제나 거리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가수는 자신을 이 작품의 작가로, 적어도 이 극을 개작한 사람으로 소개하고 있다. 또한 가수는 보고자로도 행동한다. 그는 앞으로 전개될 사건을 도입하고 사건의 발생 시간과 사건의 장소를 설정해주며, 여러 관점에서 등장인물을 소개한다. 가수가 이렇게 시간적, 공간적 배경과 등장인물을 소개하고 나면 등장인물들이 나타나서 대화를 시작한다.

 더욱이 이 작품에서 가수는 단순히 배경과 인물들을 소개하는데 그치지 않고, 등장인물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직접 지시를 내리는 연출자로서의 역할도 겸한다. 가수는 이러한 지시를 서술의 형식으로 하기도 하고 또는 직접 말로 하는 등 여러 가지 형태를 취하고 있다.

 또한, 가수가 해설자의 역할을 하게 되는데, 그의 존재는 희곡 전체에 있어 지배적인 역할을 한다. 무대 위의 사건을 관찰하고 그가 관찰한 바대로 관객을 끌어들이면서 관객으로 하여금 무대 위의 사건과 거리감을 갖게 한다. 그리고 차분한 서사적인 어조로 이야기의 진행을 이끈다. 해설자는 무대의 사건 뿐 아니라 전체 사건을 훤히 알고 있다. 해설자는 극의 공간과 시간과 사건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무대 위에서의 사건 진행을 처음부터 끝까지 관찰하고 해설한다.

 극 중 가수는 관객이 하고 싶은 질문을 던지고 악사는 인물의 상반된 심정을 표현하기도 하는데, 여기서는 가수를 보조해 주는 악사들의 역할도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전통적인 희곡에서는 독백으로 처리되었을 부분에서 가수는 관객이 품을 수 있는 의문을 대신 제기하고, 이에 악사들은 인물의 또 다른 자아가 되어 대답한다. 가수는 인물의 내면을 통찰하고 극중 인물들이 경험하는 것 이상의 것을 관객에게 전달해주며, 또한 극중 인물들이 그들의 감정을 표현할 수 없거나 하고 싶지 않은 곳에서 가수가 관객을 향한 그들의 대변자가 되어 등장인물들이 직접 표현하지 않는 생각, 감정, 심적 갈등 등을 분석하기도 하고 그것을 근거로 인물들을 조종하기도 한다. 이와 같이 가수는 연극 전체를 개관하면서 필요한 경우에 언제라도 사건 진행에 개입하여 극적 사건 진행을 자유로이 조정할 수 있는 ‘서사적 자아’로서 기능을 수행한다.

 

참고) 

전효정. "Bertolt Brecht의 후기희곡 『 코카서스의 白墨圓』 연구" VOL.- NO.- (1999)

박호문. "브레히트의 희곡 <코카서스의 백묵원> 연구" VOL.- NO.- (2001)

이재민. "고대 그리스의 비극과 브레히트의 서사극에 나타난 코러스(가수)의 기능" VOL.- NO.- (1999)

 

 

 

 

작품의 주제

 

 이 작품의 주제는 “주어진 것은 애정을 갖고,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는 사람에게 돌아가야 한다.”라고 생각한다.그리고 이 작품의 키워드는 “모성애”와 “생산성”이다.

 시대적 상황이 내포된 작품으로 당시 브레히트의 생각이 내포되어 있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이 작품에 대한 본격적인 구상과 집필이 시작된 해는 1944년, 이미 이시기에 브레히트는 히틀러가 일으킨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것임을 예감했다. 전쟁이 끝날 경우 독일은 새로운 사회 체제를 필요로 할 것인데, 브레히트는 새로운 사회를 어떻게 건설할 것인가에 관한 구상을 하고 있었다. 브레히트는 이상적인 사회를 서로가 서로를 도와주는 사회로 생각하고 있었고 그 방식으로 위부터가 아닌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 건설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계곡 분쟁에서 소유권은 사회적으로 누가 유용하게 이용할 것인가를 중점으로, 농사지을 줄 모르는 지주가 아니라 소작인 소유가 되어야 한다는 결정으로 로자 룩셈부르크의 소유가 되는 것, 그리고 극중극인 그루셰의 이야기 백묵원 재판에서도 누가 아이에게 옳은 어머니인가, 진정으로 아기를 사랑하는 그루셰에게 줘야 한다는 사회적인 관점으로 판결해 그루셰가 미헬의 어머니가 되는 것에서 두 극의 주제가 상통한다.

 

 이 작품의 절정을 이루는 백묵원 재판에서 모성애에 관한 새로운 가치를 제시하고 있다.

재판에 대한 결정은 혈욱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사회적인 복합성과 유용성의 관점으로 확대된다. 브레이트는 이런 판결의 관계에 대해서 “아이에 대한 하녀의 요구가 아니라 더 좋은 어머니에 대한 아이의 요구”에 중점을 두었다고 했다. 진정한 어머니는 아이에게 유익하고 사회적으로도 적합해야한다는 것이다. 이로 볼 때 그루쉐는 사회적으로 유용성을 지닌 인물로 나타난다.

 

또한 이 작품의 “가수”의 마지막 대사인

“동그라미 재판의 이야기를 들은 관객 여러분,

이 옛날 이야기의 숨은 뜻을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주어진 것은 그것을 유용하게 하는 사람들에게

돌려져야 된다는 것을,

아이는 활짝 피게 해줄 수 있는 에미에게

마차는 좋은 마부에게 그래서 잘 굴러간다면.

그러니 골짜기는 결실을 가져오는 마을에게로!”

을 보고도 이 작품에서 말하고 자 하는 바가 정확히 드러난다고 생각했다,. 이 점들을 종합해 보았을 때 주제를 “주어진 것은 애정을 갖고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는 사람에게 돌아가야 한다.”라고 생각한다.

 

참고)

[코카서스 백묵원] 브레히트가 그린 무용성과 유용성의 대립

[코카서스의 백묵원의 연구] 장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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