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당시 독일
엘렌 프란츠? 게오르크 2세의 세 번째 부인
‘엘렌(1839-1923)’은 예 술적으로 다재다능하고 총명한 인물이었다. 그녀는 작센 -안할트 지역의 남부에위치한 나움부르크의 유복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베를린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그녀는 청년기에는 특히 음악과 문학에 심취하 였고 예술토론과 정치에도 진중한 관심을 가졌다. 또한 프랑스어와 영어를 숙달하였고 독일어와 독일문학에 대 한 소양도 쌓았다. 한편, 그녀는 본래 피아니스트가 되기 를 희망하여 일찍이 음악공부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저명한 지휘자 겸 피아니스트 한스 폰 뷜로브에게 레슨도 받았다. 그 동안 그녀는 연극에는 별다른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러나16살무렵에스승뷜 로브의 아내 코지마의 조언을 들은 것을 계기 로 배우가 되고자 진로를 변경하였다.
그 후 엘렌은 “운 좋게” 베를린 왕립극장의 주연급 여 배우 프립-블루마우어의 문하생이 되어 연기수련을 시작하였다. 알려진 바로, 프립-블루마우어는 매우 독창적 인 성향의 배우로서 어린 나이에 데뷔하여 오페라 무대 에서 활동하다가 연극 쪽으로 전향하였다. 그 후 그녀는 뒤셀도르프에서 ‘카를 임머만의 실험적인 극장 그루펠로 테아터에서 기량을 닦으며 탁월한 배우로 성장하였다. 그녀는 당시의 스타시스템에 대대 단호히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진정한 앙상블 연기를 보여주지는 못했다고 평가된다. 그녀는 연기교사로서 엘렌에게 독일어권 무대에 등장하는 비중이 큰 역할들에 대해 후술되는 마르와같은 방향에서 사사하였다. 엘렌은 그녀에게 무대 위에서 자연스럽게 자세를 취하는 법을 배웠고 슈바벤 토속의 유머도 익혔다. 이어서 엘렌은 19세기 전반에 주로 배우로 활동하다가 이후 유능한 연기교사로 명성을 떨치는 마르의 문하에서 연기를 배웠다. 그는 학생의 재능을 발견하고 장점을 개발시키는 능력이 뛰어났지만, 교육방식은 매우 엄격하고 독재적이었다. 그는 무대를 교실로 삼아서 활보하며 학생들이 지칠 때까지 반복훈련을 강행하였다. 그 는 독회수업에서는 리얼리즘 시대의 흐름에 따라서 지난‘바이마르 양식’의 과장되고 기교적인 웅변조 수사법과는 다른, 순수한 발음으로 대사의 뉘앙스를 살리는 대사법을 지도하였다. 그리고 연기수업에서는 모든 역할을 학생들과 함께 해보이며 관습화되고 억지스런 몸짓이 아닌, 자연스럽게 미장된 연기를 가르쳤다. 엘렌은 이러한 마르의 연극관에서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그의 지도로 배우연극의 자신을 돋보이기 위한 연기술과는 다른, 자연스런 화술과섬세한 대사표현 그리고 사실적인 몸짓연기를배웠다. 또한 무대 위의 자신과 다른배우를 성찰하며 협연하는 법도 알게 되었다. 그 후 그녀는 1860년에 샬롯 브론테의 소설《제인 에어》를 각색한《로우드의 고아》에서 주인공 역으로 데뷔하였다. 그녀는 이후 고타, 슈테틴, 프랑크푸 르트 안 데어 오더, 올덴부르크, 만하임 등지로 활동무대 를 옮기면서 장래가 촉망되는 여배우로 성공적인 이력을 쌓아갔다. 그녀는 1867년에 보덴슈텟트의 제안과 설득으로 마이닝겐 궁정극장에 이적하였다. 그 후 그 녀는 극단에서 1867/68년 첫 시즌에《로미오와 줄리엣》 의 주인공 역을 시작으로 1873년 3월에 공작과 결혼하고 무대에서 은퇴할 때까지, 북독일연방과 독일제국의 유명 여배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연기력을 인정 받는 배우로서 활약하였다.
루트비히 크로넥크?
‘크로넥크(1837-1891)’는 공작과 엘렌이 결혼한 직후에 연출자로 임명되었다. 그는 브란덴부르크 안 데 어 하펠에서 태어났으며 베를린과 포츠담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그는 18살인 1855년경에는 파리에서 1년간 머물며 프랑스의 극계를 견학하였다. 그리고 독일로 돌아와서 데브리엔트의 친구 이자 멘토인 배우 겸 연출자 카를 아우구스트 괴르너의 지도를 받으며 데뷔를 준비하였다. 그 후 그는 1856년에 베를린의크롤쉐 테아터에서 정식으로 데뷔하였다. 그 후에는 독일연 방과 스위스, 헝가리 등지의 다양한 무대에서 우스꽝스 러운 레퍼토리로 관객에게 웃음을 주는 “수수한 배우”로 활동하다가, 마침내 1866년에 에이전 트를 통해서 마이닝겐 궁정극장과 계약하고 희극부문의 배우가 되었다.
그는 마이닝겐에서 1866/67년 첫 시즌 동안《햄릿》의 길덴스턴 역을 시작으로 장르의 제한 없이 40개 역할을 맡아 53회나 출연하였다. 알려진 바로, 그 는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배우는 아니었으나 선량하고 사교적인 품성을 지녔으며, 특히 무대에 오를 때마다 준비성이 철저한 점이 남달랐다. 이상의 엘렌과 크로넥크는 여러면에서 공통점을 지녔다. 우선, 그들은 유복한 중산층 출신으로, 베를린에서 성장기를 보내며 양질의 교육과 함께 수준 높은 외국어 실력을겸비하였다. 특히 그들의 교육수준과 외국어 능력은 공작의 연출 의도와 방향을 잘이해하고 조력하는 일과 더불어, 마이닝겐 극단이 독일어권뿐만 아니라 영어권과프랑스어권까지 순연하는데 매우 유용한 자격요건이 되었다. 또한 그들은 배우연극의 오랜 관습과 관행 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실주의 연극을 탐색하는 연기교사와 연출자들에게 사사받았고, 그 과정에서 엄격한 지도 방식과 강도 높은 훈육을 경험하였다. 이에 그들은 배우 로서 과거의 과장되고 양식화된 연기도 도래할 자연주의 연극의 꾸밈없이 적나라한 연기도 아닌, 사실적인 재현 에 가치를 둔 과도적인 연기술을 배웠다.이와 같은공통점으로, 그들은 마이닝겐 극단에서 소통이 잘되는 가운데효율적으로 협업할 수 있었다.
마이닝겐 극단 역할 분담
게오르크 2세는 연극제작 과정에서 이들과 각자 의 재능과 능력에 맞게역할을 분담하였다.
또한 그들에게 막대한 재량과 함께 권위도 부여하였다. 우선, 공작 자신은 작품의 해석과 무대의 시각화 부문에 전념하였다.
마이닝겐 극단 연출 원칙
게오르크 2세는 배우연극에 대해 원칙적인 반대론자였다. (ex-배우연극의전성기 1870년대에 베를린과 빈, 드레스 덴, 뮌헨 등지의 대도시 극장들에서 희곡은 전술한 바처 럼 스타들 위주의 전통으로 인해 문학적 가치를도외시 한 채 개작되었다.)
희곡의 경우는 잘짜인 앙상블효과를 위한 표준으로 삼으며 연출의 구심점에 두었다. 그리고 전술한 바처럼 포괄적 역사주의 하에서 원전에 충실함의 원칙을 견지하였다. 나아가 피셔-리히테가 논구한 바로서, 이러한 희곡본위의 앙상블 원칙은 논리적으로 무대공간에는 지문과 일치하는 역사성을 부여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의 무대배경, 의상, 소품, 장식 등의 세목은 “철저한 역사적 사실주의노선”에서 제작되었다. 그리고 이를 위해 학술적 고증과 전문지식의 활용 및 현지답사 같은 연구과정이 선행되었다.
배우들의 연습과 훈련에는 전술한 ‘분업화와 함께최종 협업의 방식’을 도입
-철저한 역사적 사실주의 무대와 더불어 완전한 앙상블 연극을 실현하기 위한 방법
엘렌; 무대 리허설 전에 ‘공연대본 읽기’를 지도하였다. 이 과정의 목표 는 배우들이각자의 역할을 충분히 이해하고 대사를 정확히 자연스럽게 발화하도록 연습시키는것 이었다. 이를 위해 엘렌은 스승 마르의 교육방식을 따라서 모든 배우를 대상으로각각의 대사를 세심히 지도하였다. 그루베 의기록 중에서 ‘배우들에게 지침을 신속히 습득하도록 강요하고 않았고 시간을 갖고 공연에 조화롭게 어울릴 때까지 반복적으로 연습시켰다. 하지만 그 결과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하였다. 즉, 마이닝겐극단에 대한 비판들 중에는 ‘배우들의 기계적인 교육에서 비롯된 부자연스러운발성과 대사에 대한 내용들’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였다.
그 당시 관객의 평가
파울 린다우는 마이닝겐 극단의 공연, 특히 위와 같은 군중장면에 대해 ”공연에는 연기의 거장도 엑스트라도 없었다. 작가에 봉사하는 열정적인 의지의군중들이 있을 뿐 이었다!”라고 평론하여, 희곡본위의 연출법에 대한 부정적인식을 드러냈다.
반면에, 라우베와 루트비히 자이델 같은 반대론자들은 ‘지나간 시대의 원전을 그대로 상연하는 것은 극계 의 유행과 보편적 시대정신에 반하는 것’이란논지로 이를 비판하였다.
또한 공작의 철저한 역사적 사실주의 무대와 연출 플랜에 의한 목적연출에대해서도 ‘새로운 연출술과 더불어 새로운 목표를 제시’, ‘새로운 연출 파(派)의 형성’ 등의 찬사와 함께, 군중장면은 “군중의 우스꽝스러운 해방”, ‘단역들에 대한 과도한 배려’, ‘배우의 역할이 지닌 가치와 의미보다 다른 수단들로 관객의 이목을 끄는..혐오스럽다’ 등의 냉평이 공존하였다
[한국연극사] 해방전-1990년대 이후 (2) | 2023.02.07 |
---|---|
[작가] 김우진 - feat.사의 찬미 (2) | 2023.02.07 |
작센 마이닝겐 게오르크 2세 - (1) (4) | 2023.02.02 |
프리드리히 폰 쉴러와 그의 작품 [군도] (2) (0) | 2023.02.02 |
프리드리히 폰 쉴러와 그의 작품 [군도] (1) (2) | 2023.02.02 |
댓글 영역